봄날의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던 어느 날, 저는 문득 발걸음을 옮겨 오시게 장으로 향했습니다. 부산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겨운 풍경이 가득한 이곳. 특히 노포역 근처에 자리한 오시게 장은 오랜 시간 지역 주민들의 삶과 함께해 온 곳이지요. 북적이는 장터 구경 후, 느긋하게 범어사역까지 걸어가는 여정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오시게’라는 이름에 담긴 이야기
오시게 장터에 들어서기 전, 문득 ‘오시게’라는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졌습니다. 간단한 조사를 해보니, 이 이름은 조선 후기 동래 읍내장에서 시작되어 부곡동 까막고개 (혹은 오시게 마을)로 옮겨온 역사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옛날 이곳에는 까마귀가 많아 ‘까막고개’라 불렸고, 한자로는 ‘까마귀가 많이 모인 고개’라는 뜻의 烏市(오시) 개 또는 烏視(오시) 峴이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시게’라는 이름이 마치 부산 사투리인 “어서 오시게!”와 묘하게 닮았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이 친근한 발음 덕분에 2일과 7일에 열리는 오일장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기억되고 사랑받게 된 것은 아닐까요? 장터가 온천역 부근에서 시작해 지금의 노포동까지 이전해 오는 동안에도, 그 이름에 담긴 정겨움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장터의 활기와 범어사역까지의 산책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노포역 1번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보이는 오시게 장터 입구는 활기로 가득했습니다. 완연한 봄날씨 덕분에 가족 단위 나들이객부터 장을 보러 나온 어르신들까지,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습이었죠.
입구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제철 과일들. 특히 대저 짭짤이 토마토는 탐스러운 붉은 빛깔을 뽐내며 유혹했습니다. 어느 가게 앞을 가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화빵 노점에는 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맛보았던 태국산 게 튀김 같은 이색적인 먹거리들도 눈에 띄었고요.
장터 안으로 들어서니,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풍경들이 펼쳐졌습니다. ‘진주식당’ 같은 정겨운 주점에는 주로 아재들의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었고, 허름하지만 맛집으로 소문난 국밥집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로 북적였습니다. 윗길로 올라가 내려다본 뻥튀기 아저씨의 모습은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채소와 약재를 파는 윗 장을 지나,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가마솥 통닭 튀김집도 지나쳤습니다. 언덕 첫째 집에서는 어김없이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바로 쫀득쫀득한 수수떡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다시 내려와 국밥집 앞을 지나며 ‘정말 시골 장날 같은 풍경’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이곳의 인기가 실감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닭 부위별로 튀겨 파는 주점에서는 갓 튀겨낸 빙어 튀김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한 조각에 6천원 하는 닭고기와 4천원짜리 소주 한 병이면, 친구와 함께 만원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더군요. 앉아서 기다리며 갓 구운 수수전을 사 먹는 사람들의 모습도 정겹습니다. 물론,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게는 역시나 국화빵집이었습니다.
장터를 나와 인도를 따라 늘어선 난전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칡즙을 파는 곳을 지나 좁은 길로 들어서니, 채소, 과일, 옷가게들이 오가는 사람들로 더욱 복잡했습니다. 길바닥에 펼쳐진 신발, 옷, 모자 가게들은 물론, 마을 공터까지 옷가게들이 점령한 모습이 마치 패션쇼 현장 같았죠. 마치 보물찾기 하듯, 잘 고르면 괜찮은 물건을 득템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들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터를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범어사역까지 꽤 멀리 걸어왔습니다. 역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개나리와 자스민 꽃이 예쁘게 피어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오늘 걷는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삶의 작은 기쁨을 발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걷는 내내, 어제와 다르고 시간마다 조금씩 변화하는 무상(無常)한 자연의 섭리를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이렇게 걷고 또 걸으며, 저는 차를 타고 바로 집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느리게,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 산책이 우리 삶에 더 큰 보람과 행복을 가져다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