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란 중산층이 사라지고 사회계층이 극단으로 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부자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우리 경제의 근간인 중산층은 점차 그 지위를 잃어 결국 가난한 사람과 구별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양극화는 크게 사회적 양극화와 경제적 양극화로 나눌 수 있다. 이 둘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적 양극화, 불평등과 차별이 경제적 양극화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2017년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전체 소득에서 미국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 10%에서 22%로 2배 이상 늘었다.
대표적인 양극화로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양극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수출기업과 내수기업의 양극화, 화목가정과 비가족의 심리적 양극화, 정서적 양극화, 고학력자 간의 교육적 양극화 등이 있다. 저학력, 숙련 및 미숙련 근로자 여기에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양극화, 사무직 근로자,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노동시장 양극화가 포함됩니다. 현대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양극화가 도처에 존재하며 점점 심화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가지게 되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기게 됩니다.
– 마태복음 25:29
성경에 이런 구절들이 나오는 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양극화는 민주국가의 기본 전제인 평등을 훼손하고 사회의 특권층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인종차별보다 두 배나 심각한 사회 문제의 근원이라고 여겨진다.
상대적 빈곤감, 절망감, 환멸감, 무기력, 허무주의, 패배주의 등의 결핍감과 안락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데서 오는 도덕적 주저함도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사회 진출의 사다리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조차 과거의 일입니다. 교육의 과도한 양극화로 수도권과 지방, 명문대와 타 대학 간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금은수저를 넘어 ‘다이아몬드수저’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경제력이 자신의 능력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저도 개천에 살고 있지만 ‘나는 개천이 좋다’는 말이 옛말이라는 것을 점점 자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지위 사다리에서 역할을 현실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국가 혁신과 정부의 역할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부유한 기업과 부유한 사람들의 사회적 책임도 필요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 사회지도자의 지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정신이 살아 숨쉬며 소외된 이웃을 위한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런 종류의 기사를 쓰면서 우리나라의 정치·사회 뉴스를 읽을 수 있을까? 왜 궁금해 바람이 아닌 현실이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